다음 말씀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4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대개 이 말씀의 대상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가 다시 유대교로 개종한 배교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 직전 말씀인 히 5:12-6:3을 보면 믿은 지 오래 되었으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버린 자에 대해 말합니다.
“12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로 나아갈지니라 3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 5:12-6:3]
따라서 여기서는 이런 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히 6:4-6을 해석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된 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예수께서는 말씀을 행하지 않아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모래 위나 주추 없이 흙 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다고 하였습니다(마 7:26-27; 눅 6:49). 성경에서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자의 대표적 예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일 것입니다. 따라서 위 말씀들을 사울 왕에게 적용시켜 보면 많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손수 택하신 왕이다(삼상9:15-16).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음을 백성들에게도 손수 드러내셨습니다.
“9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10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삼상 10:9-11]
“20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22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묻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삼상 10:20-22]
사울은 전쟁에 나가서도 담대하게 적을 물리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당당하게 왕으로 인정받습니다.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삼상 11:11]
즉, 이때의 사울은 분명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자’인 것입니다.
그랬던 사울이 왕이 된 후에는 도리어 믿음이 약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 둘 거역하기 시작합니다.
“11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삼상 13:11-13]
그리고 삼삼 14장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도 사울의 불신앙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대놓고 거역한 것은 삼상 15장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22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사무엘상 13장에서의 사울의 문제는 적들의 큰 위세에 눌리면서 온 염려와 두려움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4장에서의 사울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광적인 모습이었으며 15장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원래 전쟁에서 이기면 노획한 재물과 가축과 포로 등을 군인들에게도 나눠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삼상 15:3). 그리고 그로인해 백성들의 불만이 매우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이 자신의 위상과 하나님의 말씀 중 어느 것을 더 중히 여기는지 시험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위용을 자랑코자 했으며(삼상 15:12), 백성들의 환심을 사고자 가장 좋은 양과 소를 그들의 위해 끌고 왔습니다(삼상 15:24). 이는 사울이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고 백성의 마음을 사 왕위를 굳건히 하고자 한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사울의 이러한 모습은 이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며,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교회의 인도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번번이 어깁니다. 혹자는 전도와 선교를 위해 물질을 모으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를 지금부터 보여 주겠습니다.
위 사건 후 사울은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24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25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26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삼상 15:24-26]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보다 왕의 자리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것을 깨닫고 이때부터 왕의 자리에서 물러날 각오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사울이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떠날 정도의 믿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회개는 하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믿음인 것입니다(마 3:8). 이는 곧 죄는 뉘우치되 죄의 원인은 제거하지 않은 열매 없는 회개를 말합니다. 죄의 원인을 그대로 둔 사울은 점점 더 큰 죄에 빠지게 됩니다.
“7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7-9]
“11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삼상 18:11-12]
“28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삼상 18:28-29]
사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위해 회개할 기회를 더 주셨습니다.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삼상 19:23] (※신(神) ⇨ (개역개정) 영(靈))
그러나 사울은 왕의 자리에 대한 집착을 결코 버리지 못합니다.
“30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 31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삼상 20:30-31]
사울이 다윗에게 이렇게까지 모질게 대하는 이유는 다윗이 차기 왕이 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나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삼상 23:17]
즉, 사울의 문제는 다윗에 대한 살해 욕구가 아니라 왕위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계속해서 거역하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의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조차 비난받고 있는 것은 모두 재물과 교인 수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리 많은 권고와 비난을 받아도 하나같이 꿋꿋이 버팁니다. 그것도 회개조차 없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의 결과가 파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나 이 시대의 교회 인도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상과도 같은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모두 버리는 일입니다.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24]
따라서 히 6:6의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한다는 말씀을 이 시대의 부유한 교회에 적용한다면 교회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교회들에게 나눠주고 초심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 없이는 결코 실천하지 못할 일입니다. 사울도 그랬습니다. 10년이 흘러도 왕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식을 줄 모릅니다.
삼상 24:1-5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은 다윗이 엔게디 황무지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삼천 명을 데리고 다윗을 잡으러 갔다가, 사울이 길가의 굴에 홀로 뒤를 보러 들어갔는데, 그 굴은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숨어있는 곳이었습니다.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임에도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만 벱니다. 사울만 죽이면 바로 왕위에 오를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그의 자아를 이긴 것입니다. 다윗은 부하들에게도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6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삼상 24:6-7]
이후 다윗이 사울에게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일을 밝히자 사울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16 …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삼상 24:16-20]
사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위 19절을 보면 사울은 분명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이 시대의 인도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20절에서 사울은 왕위를 포기할 뜻도 내비쳤지만 잠시잠깐일 뿐입니다.
“1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삼상 26:1-3]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심으로(삼상26:12) 사울을 다윗에게 또 넘기시나 다윗은 그를 또 살려줍니다.
“8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삼상 26:8-11]
다윗은 또 사울에게 나타나 이 사실을 알리니 사울은 또다시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삼상 26:21]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울은 분명 자신의 죄를 뉘우쳤지만, 왕위에 대한 집착은 결코 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사망인 것입니다.
“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5-7]
이 시대의 인도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잘못을 회개해도 지위와 재물과 교인 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평생 육신의 생각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시 44: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잠 11:28]
“3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시 146:3-4]
사울이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기는 하지만, 왕위에 대한 집착을 차마 버리지 못한 것을 안 다윗은 사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버립니다.
“1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 4다윗이 가드에 도망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매 사울이 다시는 그를 수색하지 아니하니라”[삼상 27:1,4]
문제는 아무리 죄를 뉘우쳐도 불신앙의 원인인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곧 왕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같은 죄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2]
그래서 사울은 율법이 엄히 금하는 사술에까지 손대는 죄에 빠지게 됩니다.
“5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삼상 28:5-7]
이런 사울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맡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 7:6]
사울의 집착은 결국 그에게 전쟁터에서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만듭니다(삼상 31:3-5). 이러함에도 대부분 인도자들은 자신에게 높은 지위와 재물과 많은 교인들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을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재물과 권력입니다. 여기에는 사울도, 다윗도, 솔로몬도, 서기관들도, 제사장들도, 로마 가톨릭 교회도, 근래의 그 어떤 교회도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이런 자 뿐입니다.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17-20]
구약성경에 수많은 율법들이 있지만 할례와 성전 제사, 제물, 각종 절기 등과 같이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기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도구일 뿐이고, 실질적인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지키기 적합하게 이러한 도구적 율법들을 모두 폐하시고,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에 관한 법만 추려내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분명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인도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고 탐욕스럽게 재물을 섬깁니다. 사울이 하나님은 믿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은 거역했듯이, 이 시대의 인도자들도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만 그의 말씀은 거역합니다. 그 끝은 어디일 것 같습니까?
“26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6-29]
'신앙개혁(강의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1. 용서하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0) | 2022.02.21 |
|---|---|
| 12. 제어해야 할 우리의 마음 3 - 손실혐오 성향 (0) | 2022.02.20 |
| 14. 제어해야 할 우리의 마음 4 - 분노, 시기, 교만, 자랑 (0) | 2022.02.18 |
| 15.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믿음의 시험 (0) | 2022.02.17 |
| 16. 큰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0) | 2022.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