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강의용)

04. 소극적 신앙행위와 적극적 신앙행위

손마가 2022. 3. 2. 11:53

 

  “18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18-25]

  “1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10]

  여러분은 이런 예수님의 상반된 태도가 쉽게 납득이 가십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요?

사실 이 두 이야기는 앞에서부터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이 두 이야기 조금 앞 ‘눅 18:10-13’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가 나옵니다.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0-13]

  만약 이 비유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이 말씀의 바리새인이 부자 관리이고 세리가 세리장 삭개오라면 어떨까요? 부자 관리를 이 바리새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관리’의 헬라어 ‘ἄρχων[알콘]’이 다음과 같은 용례로 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ἄρχων[알콘])라”[요 3:1]

  “관리(ἄρχων[알콘])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요 12:42]

  그런데 예수께서는 왜 부자 관리에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따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부자 관리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9 …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눅 18:28-30)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7]

  즉,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집과 전토를 버리라는 것은 재물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뜻이며, 가족을 버리라는 것은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역설적이게도 재물과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이에게는 현세에 그의 재물과 그의 가족에게 백배의 복을 내릴 것이며,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막 10:30). 우리는 재물과 돈이 우리에게 평안과 안전을 보장해 줄 것 같이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죄를 짓게 해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즉, 예수님의 교훈은 범죄금지 율법 정도만 지키는 소극적 신앙행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부모자식보다도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적극적 신앙행위를 가져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부자관리의 질문을 다른 복음서의 말씀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16 …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마 19:16-21]

  위 초록색소극적 신앙행위이며 파란색은 본질적 율법의 행위적극적 신앙행위입니다. 21절 말씀은 ‘네가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고 하니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웃에게 줄 수도 있겠구나!’라는 뜻으로 자기를 의롭게 여기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눅 18:9). 대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준다고 해도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그러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줄 정도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영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마 25:31-46’ 양과 염소의 비유가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형제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자는 영생을 들어가며 그렇지 않은 이는 영벌에 들어간다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형제를 살펴서 매번 저렇게 돕는다는 것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그런 행위로는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즉, 부자 관리는 형제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소극적 신앙행위만 있었지 형제를 사랑하는 적극적 신앙행위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 두 행위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17]

  “6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1-32] (=눅 3:10-14)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소극적 신앙행위만 있었을 뿐 이웃을 사랑하는 적극적 신앙행위는 없었음에도 그것을 의롭게 여겼습니다.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성경은 이런 범죄금지 율법(11절)과 도구적 율법(12절)의 행위소극적 신앙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며, 적극적 신앙행위는 없고 소극적 신앙행위만 있는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 율법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롬 3: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극찬을 받은 것은 그가 다음과 같은 적극적 신앙행위를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8-9]

  인간 스스로는 위와 같은 결단을 내리기 불가능하지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해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게 하십니다.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눅 18:13-1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겔 36:27)

  이것이 소극적 신앙행위만 있고 적극적 신앙행위는 없어 영생에 이르지 못한 부자 관리와 적극적 신앙행위가 있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던 부자 삭개오의 차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