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개혁(강의용)

07. 제어해야 할 우리의 마음 1 - 염려와 재물을 탐하는 마음

손마가 2022. 2. 26. 09:4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염려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빌 4:6-7)

  그러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염려가 우리를 불신앙으로 이끄는 원인이라는 것을 아무도 깨닫지 못합니다(눅 21:34).

  “…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이 염려와 두려움이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성경 시대의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한 불신앙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는 여태껏 우리가 염려와 두려움을 극히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 당연시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염려와 두려움은 믿음의 대적입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때의 사건들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1-3]

  이들은 ‘무엇을 마실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광야에서 물을 마시지 못하면 가다가 탈진해 죽을 수도 있으므로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불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어 자기와 자기 자녀들과 가축들이 목말라 죽을까봐 염려하고 두려워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다투며 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을 보겠습니다.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민 14:1-4]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땅 정탐 보고를 받고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두려움으로 인한 불순종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처자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아 다녀야했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사로잡히리라’하며 그토록 염려했던 그들의 자녀들은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민 14:22-23, 28-33).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야생활 40년이 다 돼 갈 무렵 이들은 또다시 염려로 인해 불신앙을 저지릅니다.

  “2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2-5]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까지 시험에 빠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민 20:12). 염려로 인해 다른 이까지 실족하게 만든 것입니다.

위 세 사건에서 그들이 무엇을 걱정했는지를 보십시오.

  “…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3]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민 20:4]

  위 염려를 요약해 보면 그들 자신과 자기 가족, 자기 가축 걱정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믿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마 10:36-37]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믿음의 길로 가려는 사람이 자기 가족의 안위에 대한 염려 때문에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로 믿음의 길로 가려는 이를 그 가족들이 걱정하고 염려해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안 식구가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집안 식구가 원수가 아니라 염려가 원수인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와 자기 가족을 염려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자기 가축(짐승)들은 왜 염려했을까요? 그들은 광야를 떠돌아 다녔으므로 집도 없었고 농작물을 경작할 땅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재산은 가축뿐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젖과 고기와 가죽을 얻을 수 있고 또 무거운 짐을 실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짐승을 팔아 다른 물건을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이들이 가축들을 염려한 것은 자기와 자기 가족의 안위를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다음과 같은 것이 신앙을 위협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은 ①자기를 사랑하며돈을 사랑하며 …”[딤후 3:1-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①세상의 염려와 ②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22]

  “… ②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막 10:23]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어떨까요?

  (2) 요즘 시대의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한 불신앙

  오늘날에도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한 불신앙의 원인은 여전히 자신과 자기가족 그리고 재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시대와 차이점도 있습니다. 성경시대에는 닥친 현실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컸지만, 오늘날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더 큽니다.

  필자는 교회에서 연세 드신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우리 때는 다들 믿음이 괜찮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문제야! 자주 모이지도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헌신도 하지 않아! 게다가 학생들은 교회도 제대로 안 나와!”

  사실 이것은 요즘 사람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 요즘 시대를 탓할 문제입니다. 바로 염려와 두려움의 문제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잠잘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으면 걱정이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는 농사지을 땅만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은 없었고, 도시에서도 쉽게 직장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밥만 굶지 않으면 만족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여유가 있어 하나님의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시대는 사회가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면서 교통비, 통신비, 교육비, 주거비 등 예전에는 없거나 크게 들지 않았던 비용들이 급격히 증가해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집값과 주거비는 천정부지로 올라 웬만한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으며, 늘어나는 교육비와 가파르게 올라가는 물가는 가계에 큰 부담을 줍니다. 게다가 가계 수입만으로는 이런 것들을 해결하기 어려워 대부분이 대출을 하는데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비해 염려와 두려움이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시대에는 사회 전체가 돈벌이와 학벌 쌓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이 남들보다 뒤쳐져 사회에서 낙오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야할 열정과 시간과 돈을 자기와 자기 자녀를 위해 다 쓰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과거에는 믿는 이들이 사회적 불이익이나 핍박이 두려워 믿음을 저버렸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적·경제적으로 남들보다 뒤처지면 어쩌나하는 염려가 믿음을 저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산업화·도시화가 만들어낸 폐해인 것입니다. 학교 교과서에도 산업화 도시화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감소하고 개인 중심의 생활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 증가하며 인간 소외와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가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소외란 인간의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만든 물질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요즘시대에 염려와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에서 핍박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것 못지않은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필자도 이러한 고충들을 경험했고 또 이해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써야할 열정과 시간과 돈을 자신과 자기 자녀에게 모두 쏟아 붓는 것을 어찌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장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재물을 더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비견되는 죄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미움, 시기, 분노 등의 감정과의 싸움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염려와 두려움이라는 감정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다 이겨내는 사람도 감정 하나를 이기지 못해 실족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7-8,10]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예수께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위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이 땅에 마음을 둔 사람은 땅에서의 일을 염려해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둔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행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에 이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2-23]

  이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 영적인 눈이 밝으면 ‘온 몸’ 곧 우리가 하는 일도 사람들을 진리로 이끄는 등불과 같겠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그가 하는 일도 항상 어두움의 일일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재물 ⇨ μαμμωνᾶς[맘모나스])

  여기서 ‘재물’로 쓰인 μαμμωνᾶς[맘모나스]는 아람어 ‘맘몬’의 음역입니다. 부와 재물을 뜻하는 이 맘몬은 유대교 전승에서 내려오는 악마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재물을 맘몬에 비유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우상처럼 섬겼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은 믿음의 가장 큰 대적입니다. 중세 가톨릭도, 작금의 교회도 모두 돈과 재물을 섬김으로 심각하게 부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위 말씀 뒤에 나오는 말씀이 뭔지 압니까? 바로 염려에 대한 말씀입니다.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 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마 6:25-34]

  위 25절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은 “목숨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서 어찌 음식과 의복은 주시지 않겠는가?”라는 의미입니다. 즉, 음식과 의복 걱정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생활에 대한 염려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세대까지도 위험해집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가, 우리 성도들이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려합니까?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들에게 외쳐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요나 선지자 때의 니느웨 사람들처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욘 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