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마음의 평정을 되찾기 위해 자기를 방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런 심리의 좋은 점은 인간이 큰 상처를 받거나 절망에 빠졌을 때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 염려나 두려움이 있을 때 성경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 위로 받는 것도 자기방어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본능이 자신의 죄나 잘못을 합리화 또는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거나 죄의식을 없애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와 같이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것이어서 어기면 큰 죄가 되는 것임에도 서슴없이 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보는데 바로 이러한 본능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14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저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삼하 11:14-15]
이는 과도한 욕심 때문에 자기방어 본능이 극대화되어 죄의식을 억제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조차도 자기방어 본능의 희생자가 될 정도니 이것이 신앙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삼하12:10-12) 그의 자식들이 범죄에 빠지도록 허용하십니다.
“21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2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1-22]
위와 같은 일은 율법에 엄히 금하고 있고(레 18:7-8), 인간의 도리에도 어긋난 극악무도한 짓입니다. 그러나 왕권을 굳건히 하려는 압살롬의 욕심이 자기방어 본능을 활발히 작동시켜 죄의식을 마음에서 지워버림으로써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인간은 타고난 죄인이므로 누구든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망하지 않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5]
하지만 인간의 합리화 본능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조차 막아버린다. 합리화와 거짓말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습니다. 거짓말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거짓이란 걸 의식하고 하지만, 합리화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이므로 자신이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고전 3:18]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 5:3]
이와 같이 인간은 자신을 속이는 방어기제인 합리화 본능 때문에 회개는커녕 죄를 깨닫는 것조차 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본능으로 보지만, 믿는 이들은 그러한 것들을 깨닫고 회개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합리화 본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함으로써 죄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첫째, 합리화 본능은 죄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고 남을 탓하게 만듦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13]
“18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20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21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삼상 15:18-21]
둘째, 자신마저 속이는 합리화 본능은 성경말씀이 분명 자신의 죄를 지목하는데도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1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5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7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삼하 12:1-7]
이후 다윗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자식 잃는 슬픔을 겪고, 자식 때문에 큰 수치를 당하고, 왕위까지 찬탈당하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합리화 본능은 현재의 만족을 위해 미래에 파멸에까지 이를 수 있는 치명적인 죄를 짓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늘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셋째, 합리화 본능은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게 만들어 자신마저도 속임으로써 우리에게 죄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삼상 23:7]
사울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고 자신은 버렸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삼상 15:23; 18:28; 23:17),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 23:14]
넷째,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해당 분야의 권위자 또는 큰 업적을 쌓아 부와 명성을 얻은 사람은 합리화 본능이 더욱 강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를 지적한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3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마 14:3-5]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막 6:19]
이것으로 볼 때 왕의 죄를 지적한 요한과 나단 선지자나, 죄를 지적받고 회개한 다윗이나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문제는 이런 본능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용납하지 못해 억압하고, 모함하고, 해치기까지 해 씻지 못할 큰 죄를 짓게 한다는 것입니다.
“28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29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삼상 18:28-29]
이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것을 지키려하는 본능이 더욱 강해 회개하는 것이 더더욱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같이 죄를 저지른 후 책망을 듣고 회개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이러한 본능은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일까지도 변명하고 합리화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어떤 목사나 장로가 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지금까지의 공로로 보면 저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넘어가도 돼!”라든지, “저 분이 그럴 리가 없어! 분명 모함이거나 무슨 사유가 있을 거야?”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의 죄를 합리화하며 감싸주면 그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회개하지 못하게 해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0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 5:30-31]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여섯째, 합리화 본능으로 인해 저지르는 죄들을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가 점점 자라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큰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곧 자기 잘못은 깨닫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과 정죄를 일삼거나, 자기 잘못을 알더라도 자신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타인의 잘못은 용서치 않는 파렴치한 사람이 됩니다(마 18:23-35).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3-5] (=눅 6:41-42)
이와 같이 합리화 본능이 작동되면 남들은 그것이 죄임을 다 아는데도, 정작 본인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사 잘못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불가피한 일이나 당연한 일로 여겨 죄책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합리화 본능은 지금 어떻게 작동되고 있을 것 같습니까? 성경의 악인들의 죄악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남 얘기로만 보이고, 우리는 성경 말씀을 좀 거역해도 예수를 믿으니까, 예배를 잘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봐주실 것 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기분 탓입니다. 성경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우리의 죄악이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의 죄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입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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