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수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그것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하고 있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은 모두가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이런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바울도 도구적 율법의 무용성을 얘기함과 동시에 본질적 율법인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했습니다.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3-6]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 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다고 말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얘기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는 율법은 도구적 율법을 말하며, 본질적 율법이자 예수님의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는 율법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형제 사랑에 대한 세 가지 교훈을 통해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영생을 얻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함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형제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첫 번째 교훈을 보겠습니다.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0-24]
이는 형제 사랑의 계명을 등한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비판한 말씀으로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멸시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는 것은 현세에 받는 벌을,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내세에 받는 심판을 말합니다. 즉 형제와 화목하지 않는 자는 현세와 내세에 모두 심판을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경고도 이와 같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다음으로 형제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두 번째 교훈을 보겠습니다.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5-29]
구약 이스라엘은 신앙공동체였으므로 위 말씀의 이웃은 신약시대의 형제와 같은 개념입니다. 따라서 형제사랑으로 통일해서 말하겠습니다.
위 말씀에 대해 혹자는 영생은 은혜로 얻는 것이지 율법을 행해서 얻는 게 아니며 이 두 계명을 지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므로 이 말씀은 ‘네가 영생을 얻기 위해 그것을 행할 테면 행해봐라. 어림도 없을 것이다’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4]
그러므로 위 눅 10:25-29 말씀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Q(25절) :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26절) : 성경에서는 무엇이라 하더냐?
Q(27절) :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하라 했나이다.
A(28절) : 맞다. 그렇게 행하라. 그리하면 구원받는다.
Q(29절) : 그렇다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 (제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3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눅 10:30-35]
예수께서는 이 말씀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에 비유해서 말씀하는데, 이것을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서기관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바리새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만약 예수께서 위와 같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으로 비유를 했다면 당시 사람들은 “에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그랬겠습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제사를 드리는 직무를 담당하는 자들이었기에 시체를 멀리하고 늘 몸을 정결하게 해야 했습니다(민 8:5-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그의 백성 중에서 죽은 자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럽히지 말려니와”[레 21:1]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민 6:6]
강도 만난 자는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매우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그를 도와준다면 그것을 본 사람들이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과장되게 말해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자로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사함 받는 소중한 제사를 부정한 자에게 맡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땅도 없고 생업도 없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수입원은 바로 제사의 제물(고기와 가죽)과 백성들의 십일조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대부분 지주이므로 백성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위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사마리아인도 모세오경을 경전으로 삼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지만 유대인들은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이는 과거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이방인들을 북이스라엘로 이주시켰는데, 그들과 이스라엘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이 바로 사마리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이방인 취급하며 경멸했고, 이에 따라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을 증오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족속들은 진멸하라 명하셨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한 형제자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는 선을 행하라 명하셨습니다.
“16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신 20:16-17] (=신 7:1-2)
“7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8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신 23:7-8]
“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출 23:4-5]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잠 25:21]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눅 6:35]
아마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읽은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그들을 비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자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그 사람을 도우면 생계에 큰 위협을 받는데도 선뜻 나서서 도울 수 있겠습니까?,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당신의 철천지원수인데도 불이익을 각오하고 나서서 도울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와 같이 행했더라면 교회가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겁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구제가 아니라, 형제 사랑입니다. 설사 그 형제가 내 원수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와 원수 맺은 형제와 화목할 수 있는 길은 내가 먼저 그를 사랑하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형제사랑이 영생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가 율법교사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눅 10:25)”라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6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6-37]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 교사와 예수님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사랑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서 왜 이웃 사랑에 관한 이야기만 했을까요?
하나님께 상처받는 이는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 중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많습니다. 그러나 다들 사람에게는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문제는 그 중 상당 부분이 스스로가 만든 과장된 상처라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형제에게 노하고 형제와 다투다가 결국 형제와 원수가 되고 마는 큰 죄를 범하고 맙니다. 즉, 이 율법교사의 질문은 내 주변에 상종조차 하기 싫은 원수 같은 형제들이 많은데 그들도 내가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할 대상이냐는 것이었으며, 그의 의도를 간파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이라면 그가 네 원수라 할지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자보다 믿는 형제·자매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요(요 1:12-13; 요일 5:1), 하나님의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고전 3:9; 고후 6:1). 따라서 그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그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요 13:20).
이것은 형제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세 번째 교훈인 다음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34-40]
40절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서 보듯 위 말씀의 대상은 믿음의 형제자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자매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며,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자의 믿음은 거짓이며 또한 죽은 믿음이므로 영생을 얻지 못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4: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5: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 4:20-5:1]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17]
'신앙개혁(강의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8. 용서해야 할 죄와 책망해야 할 죄 (0) | 2022.02.24 |
|---|---|
| 09. 제어해야 할 우리의 마음 2 - 과장된 상처 (0) | 2022.02.23 |
| 11. 용서하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라! (0) | 2022.02.21 |
| 12. 제어해야 할 우리의 마음 3 - 손실혐오 성향 (0) | 2022.02.20 |
| 13. 회개해도 소용없는 자 (0) | 2022.02.19 |